손석희 – 지각인생 (월간중앙 2002년 4월호 ‘내 인생의 결단의 순간’)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 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 두시 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 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 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반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즘 회사 일을 그만두면서 육체적으로는 많이 평온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피곤하고 급하다.
병역특례 일을 하면서 우물 안에서 자만감을 가졌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우물 밖으로 나와 태양과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니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개발자 커뮤니티에도, 블로고스피어에도 고수들은 넘쳐난다. 우물에서 빠져 나오기 전에도 그들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타인을 의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지금에서야 눈에 제대로 띄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자신감을 위해 다시 우물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기엔 내가 들인 노력과 부모님께서 나에게 들인 노력이 너무도 아깝다. 난 아직 정확하게 어떤 분야에서 내 꿈을 펼치겠다는 것도 없는 우유부단한 놈이지만,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은 버린 적이 없다.
내 위치와 나이를 돌아보았을 때 결국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다.
하나는 나이를 순응하고 나와 같은 나이 또래의 학우들과 같은 길을 ‘일단은’ 걷기 시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위치를 순응하고 나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학습해 온 길을 걷는 것이다.
두 가지 다 할 수는 없다. 전자는 취직이고 후자는 학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자는 병특을 이용해 빠른 길을 탈 수도 있지만, 후자는 사실상 병특의 혜택을 대부분 포기하고 지각인생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세부적인 선택이 다시 나타나겠지만 나는 아직 이 선택조차 해결해 내지 못했다.
임시방편으로 공통점을 찾아서 공통된 것들을 학습하고 또 학습해 봐야 언젠가는 선택을 피해갈 수 없는 날이 온다.
그 때까지 선택을 미루는 일이 마음 편한 일일까?
아니면 지금 눈 딱 감고 선택한 다음 다른 길은 잘 되던 말던 무시하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일까?
언젠간 내가 선택을 하게 된다면 나는 무모한 선택도 눈 딱 감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선택과 결단의 앞에서 나란 사람은 너무도 나약하다.